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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김시연展
날짜 : 2014.10.23 ~ 2014.10.29
장소 : 모리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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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처 : 042-867-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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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김시연展

전시기간 : 2014.10.23 ~ 2014.10.29

전시장소 : 모리스 갤러리

관람시간 :

관 람 료

문 의 처 :  042-867-7009



아이러니(irony), 비가시적 반어의 세계에 관한 통찰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작가 김시연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인 ‘아이러니(irony)’는 반어(反語)다. 단어가 지정하는 것 그대로, 어떤 것에 대한 의미 전달을 강화하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아이러니 속에는 짙은 모순(矛盾)이 숨어 있다. 현상과 결과에 있어 원인과 상이한, 앞뒤가 맞지 않는 사회적 현실을 예술의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아이러니는 모순에 관한 내레이션이 아닌, 모순을 더욱 모순되게 만드는 장치로써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모순의 아이러니화’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에선 모순의 아이러니화 사례를 드물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외적인 것 보다 내적인 것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외모지상주의에 천착하고 마는 현실을 다룬 <Irony-Expression>(2011)를 비롯해, 살상과 침략의 기호이자 인류문명의 파괴를 상징하는 무기인 총을 사용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서너 살 아이들에게조차 장난감 총을 쥐어주는 실상을 담은 <Irony-Gun>(2011) 등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각기 다른 개성의 중요성을 되뇌지만 전체주의적 관점의 지속적인 투영과 획일성 및 통일성을 강요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은유하는 <Irony-Individuality>(2011),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맹수를 동물원에 가둬 지배하는 사람들의 이치 어긋나는 상황을 담은 <Irony-Food chain>(2011)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물론 그런 점에선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근작들도 동일한 등선을 그린다.

흥미로운 건, 위와 같은 모순적인 상황이 현실에선 대체로 가시적이진 않다는 점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주의하지 않을 경우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아이러니라는 명사를 대입하여 작업의 동기로 삼는다. 물론 그 동기를 표상화하기 위해선 조형성에 대한 탐구가 수반되어야 하고, 이에 작가가 선택한 것이 ‘반복’과 ‘중첩’이다.

작가의 작업에 나타나는 반복과 중첩은 일차적으로 연속성(이를 나열, 축적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을 띤다. 그러나 동일한 폼(form)이나 이미지를 수용하는 틀을 되풀이함으로써 획득되는 효과는 형태적 요소에서 의미적 요소로 전환뿐만 아니라 시공의 동시성, 순환성을 염두에 두게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신이 의식 안에서 대상과 지식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함으로써 일치되는 새로운 대상을 향해 전진하는 매개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반복과 중첩이 동시대미술에서 갖는 의미는 탈장르, 탈경계에 있다. 여기서 언급한 탈장르, 탈경계는 당대 예술에서 흔히 접하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의미 없는 형식과 부분들의 합이 전체가 되는 소산구조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시연의 작품이 조각이면서 회화 같고, 조각적 여운이 묻어나지만 어느 면에선 설치처럼 다가오는 것도 동일한 이유 탓이다.

 

2. 작가가 투명한 아크릴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본래 입체감과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종의 조형공간에 관한 효용이다. 이와 같은 판단은 “반복이 주는 시선유도의 효과와 재질이 선사하는 공간감과 깊이의 형성”이라는 그에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라는 주제의식에 적절히 부합하는 일부일 뿐, 그것이 온전한 정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60-70년대 팝아티스트들의 작업이나 미니멀리스트들의 작업에서 엿보이는 반복성과 근친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과도 다르다. 만약 언어와 사고의 함축으로써의 전개가 지향이라면 외피적 반복과 패턴화에 대한 고착은 김시연의 작업과 합의되지 못한다. 마치 히사이시 조의 연주 <바람이 지나는 길>을 들으며 음률의 패턴만 생각하면 곤란한 것과 같다.

그 보다는 차원이 다른 실제와 허상의 공존이라는 개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환영과 실체에 관한 모순어법의 연장이라는 것이 맞다. 때문에 김시연의 진술은 필자의 관점에선 일부에 대한 이해만을 규정하며, 따라서 그 보다는 자기 존재에 관한 투명의식에 다가서기 위한 시도로 읽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자기 존재에 관한 투명의식, 이를 조금 더 쉽게 풀면, 예술가가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예술가들이 예술의 행위와 목적에 있어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김시연 역시 스스로의 존재를 향한 응시로부터 얻어지는 자기인식에서 조형요소와 원리들을 연구하게 되고, 형태와 표현 방법, 재료 등을 거둬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한 조소 또는 소조의 경향을 넘어 무엇인가를 다르게 표현하기 위한 혹은 표현과 더불어 더욱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변화를 거듭해온 것은 투명한 의식을 조타 삼기에 가능한 것이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것이 비록 자각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이처럼 투명성에 관한 논의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 이번엔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논해보자. 일단 우린 그의 작업에서 약간의 혼란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조각인지, 설치작품인지, 오브제로 머무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의 작품들은 조각이요 설치이며 오브제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형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굳이 분류하자면 단지 내용을 담기 위해 필요한 형식일 따름이랄 수 있다. 또 하나 거론해야할 부분은 주제가 함의하고 있는 질문들이다.

그는 되묻는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부유하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런데 실상 그는 묻지 않는다. 질문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그건 그저 타자의 시선에서 그렇다고 여겨질 뿐, 실제로는 ‘제시’의 단계에서 멈춰 있음이 옳다. 그리고 그 제시의 방법은 앞서도 거론한 모순이거나 또는 딜레마이거나 또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아이러니이다. 여기 어디에도 명확한 답은 들어 있지 않다. 좌우, 위-아래 시선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형상처럼 느끼고 사고하고 판단의 저울을 조금 더 기울게 할 요소들만이 투영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 또는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공유케 한다는 사실이며,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에 놓인 의미를 통해 공감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3. 우리네 삶에 부유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한 회고를 오늘에 반추해 새로운 의제를 도출시킴으로써 작가적 가치관을 고정시키고 있는 김시연 작업은 다양하고 다원적인 구조들로 채워진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유의미한 지점을 목도하게 한다. 현존성을 지니지만 반드시 명징함을 증명하지 않는 투명한 아크릴을 통해 시간의 궤를 돌아 일궈진 많은 것들을 고찰하게 하고 각기 다른 자신들의 삶을 확인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우린 그의 패턴화 된 중첩과 반복의 작업에서 보이지 않는 흐름을 타고 시대의 혼란과 이율배반을 발견하며, 자르고 붙여 그 위에 일정한 이미지를 손으로 다듬은 그의 형상들을 통해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더구나 그것이 언뜻 사회적인 테마이기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할 경우 그만큼 흥미로움 역시 배가 된다.

그러나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즉각적이다.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여러 방식으로 직조할 따름이며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현상을 포함해)에 대한 주의 깊은 언어를 내놓고 있는 게 맞고, 그에 따라 일견 친절하다고 평가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고의 유영을 제한하는 단점도 있다.

더불어 깊이의 단위를 헤아리게 한다. 이는 자신의 작업 나침반이 철학적, 미학적 범주에서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 지적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김시연은 아직 젊은 작가이다. 그에 따라 물리적 여백도 넓다. 따라서 만약 오늘의 자문을 인지하고 감당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현실적 구현의 가능성이 높고, 성실한 만큼 성과도 낮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물론 모르긴 해도 이번 전시가 작가에겐 또 한 번의 변화내지는 도약을 향한 중요한 배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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