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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황영기展
유형 : 대전미술전시회
날짜 : 2015.01.22~01.28
시간 : 오전 11시 ~ 오후 6시
장소 : 이공갤러리
티켓정보 : 무료
판매가 :
문의처 : 042-24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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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황영기展, 대전전시회

전시쟝르 : 대전미술전시회

전시기간 : 2015.01.22~01.28

전시장소 : 이공갤러리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6시

관 람 료 : 무료

문 의 처 :  042-242-2020



<도시의 ‘노마드’ 황영기>에 관하여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본 때가 1980년 대 초반, 그를 아주 원초적인 드로잉과 페인팅의 묘화법을 소지한 예비 화가 지망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다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3 ~5년 여) 작업이나 화랑가(작가들) 와는 잠시 거리를 두고 지낸 걸로 안다. 왜 그랬는지는 당사자의 ‘사적 공간/private proxemics’으로 남겨 두려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알 만한 사람은 대충 그의 고단한 삶의 고충과 깊은 고뇌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우리 화단의 편벽된 견해와 경직하고 조신(?)한 예술문화계의 분위기를 탓하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기 때문 이다. 이제는 추세에 밀려 시효를 잃은 ‘먹다 남은 밥상 위의 식은 음식’이 되어 버린 우리네의 기존 회화(1970~‘90년대 한국 현대회화의 개념/전개/유형의 방법론과 결과론)에 더 이상의 매혹/erotic을 느끼는 사람(전문인)은 없다. 이 글이 서두부터 우리의 현대미술을 애써 폄하하려는 의도로 비쳐질까 조심스럽다. 필자는 누구보다도 우리 한국 현대미술의 ’문화수호자/cultural guardian'를 자처하는 애국심과 화단에 애증이 많다면 많은 중년 작가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문득 작품전 서문 관계로 만나자는 그의 전언을 듣고는 내심 복잡한 마음이었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을 SNS(페북)으로 가끔 볼 적마다, 공감보다는 왜 “이렇게 해야만 할까?”, “그림과 작업이 그의 인생 노중에서 만나는 수행적인 결과물인가? 아니면 도락인가?”를 물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불쑥 건넨다. “일과 중 생활 속 도심 속의 풍경을 폰 카메라에 담아 곧 바로 휴대폰 편집 툴과 앱으로 보정하여 게시합니다.” “국내 보다는 해외에 가상공간의 친구들이 더 많고(약 60여 명), 그들만의 공간(가상공간)에서 전시도 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소통한다.”고 한다. 문득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유목 생활인/nomadize' 이 아닌가? 이 작가야 말로 우리의 시대미학인 ’박음질 없는 미학/Aesthetics of seamless'에 호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쯤해서 그의 직업을 밝혀두는 게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될 듯하다. 그의 직업은 어느 물류 유통회사의 ‘택배 배달원’이다. 최근 우리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첨예한 부조리와 불합리에 직면하고 있는 ‘갑’과 ‘을’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의 작품은 발생된다. 하면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의 아이러니 속에서 겪는 ‘택배 배달원의 하루’- 예술 은 인생의 가장 복잡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발생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예술사회학의 명제화된 주장쯤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와중에서 발생하는 ‘작품’과 ‘소통’ 이라는 점에 주목을 요한다면, 너무 사회적인 문맥이라고 마땅찮아 할 독자들도 있으리라! 누군가는 인생이 길고 지루하며, 예술은 짧고 부질없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정녕 인류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종교도 과학도 정치의 힘도 아닌 ‘예쁜 것/beauty’이라고도 한다. 한 30 여 년 전 만하여도 “파인 아트는 최소한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명제였다. 이젠 더 이상 이념적인 문제나 순수 조형론으로 미학 /예술론을 설파하거나 작품을 제작하진 않는다. 작품의 처소는 두 부류로 일별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최소한의 마지널리티로 존재하는 '실제화/literalization'의 지평이란 곳과, 다른 하나는 우리 시대/환경의 풍속과 습속을 그리 고 제기하는 ‘장르 페인팅/genre painting’이란 곳이다. 황영기의 작품은 굳이 분류 하라면 후자이겠으나, 딱히 작 품을 분류할 의사도 명분도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기존 작가들처럼 작품을 생활수단으로 여기지도 않고, 미 학/미술사의 새로운 이디엄과 문맥의 문제를 제시할 의사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화단의 어디에도 뜻과 의사가 별로 없어 보이는 작업, 다만 그의 몸과 마음(작품)은 불가분의 함수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는 우리 시대의 ‘디지털 노마드’ 라는 점이다. 업무를 수행하는 틈틈이 작업에 임하는 그의 처신과 행태야말로 시가전을 방 불 하는 우리 사회의 레지스탕스이자, 수시로 숲과 거리에 출몰하는 진정한 ‘게릴라 작가’로 그의 정체성/identity 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수집한 이미지(photo.)를 중첩/나열/병렬/에디팅의 덧붙이기 등과 같은 스마트 폰을 통한 디지털 툴과 앱의 기법을 구사하고 보정하여 무한 복제와 전송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을 채집하고 요해하 여 재구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짧은 세상, 덧없이 살자는 17~18세기 이웃 일본의 에도(江戶)시대 ‘우키요에/浮 世繪’의 예술가들이나, 1930년대 러시아 ‘구성주의자 /constructivist’들처럼 확고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표명하는 일이 얼마나 실감나게 혹은 공허하게 들릴 지는 개인의 기질과 주어진 환경의 문제이다. 이제 그의 작업은 그가 살아가는 인생의 입장과 당위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문제는 얼마나 절박하게 필연성을 띤 작업인지, 아니면 엔터테인먼트의 도락으로 타자의 공감을 얻어 낼 지는, 그의 숙제/pending question로 남겨져 있는 셈이다. 그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할 화가, <도시의 노마드/urban nomads> 황영기로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1014-12-05fri.

십이월 오후 연구실에서

J.K. Baek






대전전시회, 황영기展, 이공갤러리, 대전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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