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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깊이보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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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주영] 현실(Reality)과 환상(Fantasy)의 경계 그 모호함의 두려움 : 대전국제소극장연극축제 해외초청작,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작성자 대전공연전시 (ip:)
첨부파일
  • 작성일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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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49
평점 5점

 


현실(Reality)과 환상(Fantasy)의 경계 그 모호함의 두려움
: 대전국제소극장연극축제 해외초청작,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 주석 :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는 제7회 대전국제소극장 연극축제 초청작으로 러시아 유고 자빠드늬 극단의 작품이다. 바딤 레바노프 작, 막심 노비코프 연출.  //




홍주영(목원대학교 TV·영화학부)




비행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열기구 비행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낭만을 선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기구 비행은 TV 속 여행 프로그램이나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나 가능하다. 영상 속에 펼쳐진 열기구의 모양과 하늘로 떠오르는 그 위태로움, 그리고 바람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며 담아내는 세상의 풍경은 우리의 일상을 포착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담아낸다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 하늘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실 세계가 아닌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법한 환영(Illusion) 속의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내가 아닌 나를 바라보는 다른 존재로서 나를 보며 나를 내가 아닌 타인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꿈을 꾼다.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는 열기구에 탑승한 세 사람 열기구 조종사, 그,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이다. 이들을 태운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고, 비행하는 도중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먹구름과 폭풍을 만나고, 이를 피하기 위해 태양 가까이 올라가고, 열기구를 만든 에티엔을 만나고, 다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고백을 하고, 착륙하기 위해 내려오다 헬기로부터 사격을 당하고, 추락을 한다. 이러는 도중 이들은 답을 찾고, 길을 찾는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관객은 이 작품을 보면서 이들과는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한다. ‘이들의 대화와 스스로 하는 고백, 이들이 여정이 과연 실재일까?’ 왜냐하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이들은 실재이지만 이들의 엇갈리는 기억과 모순된 진술, 에티엔의 등장 등은 실재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작품 속 상황과 인물이 실재인지 실재가 아닌지 결정내리기가 애매하고, 주저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대체현실(Alternate Reality)’을 떠올리게 된다.




대체현실의 현실


대체현실이란 말 그대로 현실을 대신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삶의 모순으로 인해 현실이 불만족스럽거나 주체와 여러 조건이 더 이상 현실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인간은 일반적으로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대체한다.  // 주석 :  https://en.wikipedia.org/wiki/Alternate_reality  //   이러한 현실에서의 대안의 추구는 개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념이 존재하는 공간 또는 집단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억압이 없이 개인적인 안위를 보장하는 평안한 공간을 찾아가는 방법으로서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문에 대체현실은 예술을 통해 환상(Fantasy)으로 거듭나게 된다. 환상은 현실과는 대립되는 공상과 가공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을 뜻하거나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그럴듯한 개연성을 띠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침범하는 경우 등을 두루 지칭한다.// 주석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문학비평용어사전」(국학자료원, 2006),  //


일반적으로 예술은 현실을 중시하는 예술과 상상을 중시하는 예술로 나누어질 수 있다. 현실을 중시하는 예술이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외부현실의 객관성에 주목한다면, 상상을 중시하는 예술은 창조적인 상상력에 주목한다. 또한 현실을 중시하는 예술이 객관적 외부세계를 모방한다면, 상상을 중시하는 예술은 외부세계가 내면세계 같은 다른 세계 즉,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또한 환상은 예술과 현실의 문제, 인간의 인식 능력을 벗어나는 미로와 같은 유동적인 현실과 우리가 사는 현실은 허구보다도 더 허구적일 수 있다는 현실의 틈을 보여준다. 현실의 균열과 틈을 보여주는 것이 환상이다. 환상을 통해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변형의 놀이를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대처하는 우리의 인식의 폭을 넓혀준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는 작가의 텍스트 속에는 이러한 글쓰기에 열망이 현실의 문제화 함께 들어 있다. 때문에 상상을 중시하는 예술이 객관적 현실을 그리지는 않지만 현실을 더 확대한다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환상 그 모호함


그렇다면 예술에서 환상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면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는 작품 속에서 어떻게 그 특성을 발현하고 있는가? 앞에서 보았듯이 작품 속 환상의 특징 첫 번째는 환상은 현실과는 대립되는 가공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을 뜻하거나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그럴듯한 개연성을 띠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침범한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경계의 침범은 공연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다. 열기구라는 공간적 배경과 탑승, 상승, 비행 그 자체만으로 환상의 요건을 만들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왜냐하면 환상은 실재와 비실재간의 경계의 모호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극적 환영(Dramatic Illusion) 또는 실제의 환영(Illusion of Reality)의 개념 속에 이미 존재하는 요소로서 관객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지만 관람도중 그것을 실재로 믿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공연의 시작과 동시에 제시된 물리적 배경과 상황이 이미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환상의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에피소드 6에서 몽골피에 에티엔의 등장이다. 에피소드 5에서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오자 이들은 이것을 피하기 위해 태양이 있는 곳까지 올라간다. 폭풍이 지나가고 세 인물이 정신을 차리자 열기구를 발명한 에티엔이 등장한다. 이들은 에티엔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죽었거나 외계인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에티엔은 자신의 열기구에 탄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답을 하지 못한다. 이들이 믿지 않는 것은 에티엔이지 에티엔이 나타난 상황은 아니다. 즉, 에티엔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진짜 에티엔인지에 대한 의심일 뿐 폭풍이 지나간 상황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이 현상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현실인가 비현실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 경계의 모호함이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환상의 특징은 작품의 최종적인 의미를 매듭지을 수 없는 ‘결정 불가능성’이다. 이들이 여행을 마치고 열기구가 착륙하려 내려오는 순간 헬리콥터가 등장하고, 열기구를 향해 사격을 가한다. 열기구는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세 인물은 마지막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우선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헬리콥터와 열기구를 향한 사격에 당황한다. 도대체 헬리콥터는 어디서, 왜 나타났으며, 왜 열기구를 향해 사격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러한 궁금증에 휩싸여 있을 때 인물들은 자신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을 말한다. 그녀는 지구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는지, 왜 사람들은 새처럼 비행하지 못 하는지, 지구의 인력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 하다는 생각, 죽는 게 아니라 몸이 아플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는 우연은 없다는 것, 왜 나일까, 반년이 흘러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 왜 우리를 죽일까, 헬기는 누구인가, 네가 제일 중요하다, 사랑한다 등등을 생각한다. 그리고 조종사는 회사 돈으로 장례식을 치러주지 않을 거라는 것, 장례식을 꼭 해야만 하는가, 헬리콥터는 누군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죽는다는 것, 영혼의 어머니가 너에게 간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 것이 있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추락하며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기에 우리도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결정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 그 결정은 그 순간 내려질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면 그 때까지 결정은 보류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결정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에 결정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특징은 애매모호함이다. 애매모호함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확실한지 불확실한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에피소드 3에서 그녀는 과거에 큰 관람차를 탔을 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삐걱거리고 거대한 관람차에서 만난 남자와의 키스를 기억하고, 그 후 높은 곳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조종사에게 관람차에서 만난 남자가 맞느냐고 묻지만 조종사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에피소드 5에서 그녀는 과거 언젠가 10월 13일. 그를 우연히 같은 버스표를 사며 만났고, 비가 오던 그날 그 둘은 버스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택시 뒷자리에서 처음 키스를 나눴고 중앙호텔 13호에 그들은 함께였으며, 깨어났을 때 그는 거기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리고 조종사는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며 노란 꽃을 손에 쥐고 우울하게 공원에 앉아있던 그녀를 만났고 함께 관람차를 탔음을 기억해 낸다. 에피소드 8에서 열기구가 다시 출발 하려는 찰나 그가 고백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갈 곳 없던 그는 버스를 탔고 그녀를 만났다고. 그녀의 떨리던 속눈썹, 키스, 호텔방, 꿈같던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로 돌아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녀의 과거가 진실인지, 자신이 아니었다고 답한 조종사와 그의 말이 진실인지, 과거의 그 사람이 자신이었다고 다시 고백하는 조종사와 그의 말이 진실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불확실과 확실 사이에서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그 애매모호함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욕망: 희극 속에 감춰진 비극


환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결정 불가능성, 애매모호함 등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환상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들에게 열기구 비행은 대체현실이다. 대체현실이 수정할 수 없는 현실 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욕망의 대체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에피소드 1에서 그녀는 비행의 흥분을 감출 수 없고, 지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보며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조종사의 경우 어렸을 때 ‘유리 가가린’의 비행을 보고 비행사를 꿈꾸었지만 지붕에서 떨어져 비행사의 꿈을 접었고, 그로 인해 열기구의 조종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첫 비행이다. 그는 도시의 축제가 싫고 심심했기 때문에 열기구에 타게 되었다. 이들 모두는 현실의 부적응자이고, 현실을 탈출하려는 욕망을 열기구 비행이라는 환상에 투영시킨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욕망의 발현은 과연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에피소드 9의 제목은 ‘치유, 살고 싶은 욕망’이다. 이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비행시간에 아쉬움이 남아 다음에는 미국으로, 붉은 광장으로, 더 멀리 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자신의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던 집, 거리, 하나하나 그림처럼 다 그려낼 수 있는 그 곳으로. 추억이 남아있는 그 곳으로. 그는 그녀에게, 오늘의 비행은 당신 때문 이었다고, 당신을 따라 온 것이라 말하고, 그녀도 그 때문에 비행했다고 말한다. 그 순간 이들에게 직면한 현실은 추락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누가 죽이는지도 모른 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생각할 뿐이고, 고백할 대상도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 고백이고, 신에게 자비를 부탁할 뿐이다.


환상은 꿈이다. 현실이 아닌 초현실이다. 자연이 아닌 초자연이고, 작품화 되었을 때 그 해답을 독자에게 맡긴다. 또한 작품 속에서 서술되는 사건이 자연적인지 초자연적인지 결정내리기에 주저하며 애매한 위치에 있을 때 작품의 환상성은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세계에서 상상 자체가 현실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환상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모든 욕구를 얻고,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오락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 순간은 희극 속 인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환상 예술도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환상의 일반적 특성으로 ‘단절과 공포감’, ‘애매성과 의혹’을 들 수 있다. 환상은 그 자체로 일상이란 현실 속에 단절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현실 세계의 느닷없는 단절은 자연스럽게 공포감을 유발시키게 된다. 공포를 유발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현상에 대해 어떤 추측만을 할 뿐, 뚜렷한 확신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애매하게 인식하고 의혹 속에서 결말을 맞음으로써 환상효과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환상이 불쾌한 현실적 장애에 직면하여 욕구가 성취되지 못한 사람이 환상의 세계로 후퇴하여, 성취하지 못하였던 자기 희망이 달성된 것처럼 상상을 하고 즐거워하며 만족을 취하는 적응기제의 하나이지만 그 결과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이다. 추락하는 열기구에 탄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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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저작권자인 (사)대전민예총의 허락을 받아 동 기관이 2016년 발간한 "대전연극 비평과 리뷰 : 무대와의 불화"에서 평글 전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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