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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훈성] 「이종공간」, 비빙(Be-Being), 2015.7.4. 17:00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작성자 대전공연전시 (ip:)
  • 작성일 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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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50
평점 5점

「이종공간」,  비빙(Be-Being), 2015.7.4. 17:00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새로운 굿판, 그 하울링


조 훈 성


 

  굿판 돌아다녀본 이가 당에 들어서 물었다. ‘누굴 위한 굿이에요?’ 그렇다. 굿은 ‘누가’하느냐 이전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앞선다. ‘풀이’란 게 ‘맺힘’을 찾아야 제대로 혈을 풀 수가 있다. 이번 두산아트센터에서 상연된 ‘비빙’의 신작 <이종공간>은 내겐 새로운 당집이다. 난 ‘굿’을 누가 청했는지를 연신 두리번댔다. 굿이란 게, 청신하여 강신하고, 오신하여 송신하는 거다. 그러므로 ‘소리’이전에 조형된 공간, ‘누구’를 불러서 풀고, 다시 ‘누구’를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 만날 공간이 필요하다. ‘판’이란 것이 그러므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비빙’은 창작프로젝트 국악그룹으로 이들의 이전 프로젝트의 면면이 다양한 전통연행 장르를 변용 내지 재해석해서 그들의 개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 <이종공간>에서는 이전과 특히 다르게 와 닿는 부분이 어느 ‘벼랑’에 대한 ‘누구’의 한(恨)을 서사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나는 이들이 왜 ‘공간’을 가공하고(아니 불러오고), 이를 병첩하여, 그 ‘공간’ 사이에서 별리된 소리를 모으는 것인지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소리가 ‘소리’를 부른다. ‘소통’을 위해 새로 조형된 공간에서 세 소리꾼(이승희, 이희문, 안이호)의 하울링된 기괴하면서도 처량한 구음을 듣는다. 굿은 ‘풀이’, 요샛말로 ‘힐링’의 공간이다. ‘풀이’는 과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굿의 서사 형식의 정체이기도 하다. 나는 이들이 모티브 삼는 커다란 배를 타고 제물로 팔려가는 한 소녀의 벼랑에 대해 남다른 감정의 동요가 있다. 망망한 바다 앞의 한 소녀, 그리고 큰 바닷물에 수장되는 한 소녀의 죽음에서 그녀를 불러올릴 소리를 찾는다.



 


  나는 이 굿판의 하울링이 섬짓하다. 이들의 소리는 찬 바다에 잠긴 한 소녀의 소리이기보다 그 벼랑의 소녀에게 들리는 바깥의 소리로 들려졌기 때 때문이다. 굿은 놀라우리만큼 이전의 ‘풀이’와 다른 ‘거리’를 갖고 있다. 동화와 몰입을 배제하고 철저히 소리꾼의 소리로 상황을 객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 소리는 듣는 이, 아니 보는 이의 시선은 그 수장된 망자의 메아리에 가슴이 저릿할 수밖에 없다.



 


   ‘비빙’의 <이종공간>은 내게 불안한 ‘의례공간’으로 들어온다. 그 불안이란 게, ‘일상’적 ‘누구’(우리)의 입장에서 저 망자의 시공간을 바라보는 데에서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그 양자의 공간은 무슨 특별한 제례의식을 가질만한 특별한 누대와 제수가 있는 게 아니다. 또 원색의 무신도가 걸리고, 무복에 칼과 요령을 차리지 않고도 우리는 일상화된 개인으로서 한 하울링과 만날 수 있다. 나는 다시 이 ‘풀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회오리로 올라오는 소리들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 알아들을 수 없는 구음 속에 자꾸, 저 남쪽의 바다, 그 수장된 영령들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탓하며 덮어감을 안다. 그리고 이 일상의 어느 길목에서 배회하여 맴도는 소리가 나와 조우하며 오늘 내게 계속 메마른 곡성으로 증폭되어 ‘지속’된다.



 


  이 풀이, 한 ‘살림’에 대한 욕구에서, 유한한 우리 생의 현실을 혼돈화하고, 일상적 우리와 비현실계의 망자를 묶어주고 있다. 이 양자의 <이종공간>이라는 상황의 입체는 결국 이 양자가 따로 별리된 게 아닌 하나의 ‘혼’을 나누어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굿’을 통해 ‘죽음을 삶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 굿의 속성이다.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판, 나는 오늘의 새로운 굿판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가늠한다. 하지만 그렇게 연출된 이색 공간이 굿의 서사로 단번에 진정한 ‘풀이’가 되어 관극자들에 심정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전통음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란 게, 일부로 추상적 시공의 혼재를 정형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원래의 것이 가공되어 예술적으로 공연화된 데에는 분명 공유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다 확장되고 진정성 있게 소통되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진정을 변조하는 게 ‘열림’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 것인지도 다시 따져볼 일이다.  (*)






조훈성(문학박사, 공연축제평론가)

문학박사(「마당극의 사회의식 변화에 관한 연구 : 대전ㆍ충청지역을 중심으로」 (공주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논문, 2013)

前, 사)한국민족극운동협회 <민족극과예술운동>편집장

現, 공주대학교, 한밭대학교 출강.

現, 공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現, 민족극예술연구소 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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